우리 회사가 41년간 고집스럽게 지켜온 철칙과 자부심이 있습니다. 완벽한 제품생산과 깔끔한 A/S죠. 너무 당연하지만 강조하는 이유는 전기는 에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관용이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는 얘기죠. 아차하는 순간 사고로 이어지므로 매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산지역 전기업계의 대모격인 여성파워 기업가로서 삼일전기를 이끌어온 박판득(67) 회장의 평소 철학이다. 그는 결혼 초부터 남편을 도와 회사와 부침을 같이해온 산증인이다. 삼일전기는 전기수배전반과 전기플랜트 제작 설비공사라는 한 길을 걸어오면서 업계에서 명성을 쌓았다. 부산서는 유일하다. 전국서도 몇 안 되는 전문 회사로 꼽힌다.
지하철·대형 공사 현장
전기수배전반·플랜트 제작
수주부터 조립·시공까지
독보적 '원스톱시스템' 갖춰
회사는 4월로 창사 41주년을 맞았다. 2012년 4월에는 낡고 협소한 금정구 회동동 사옥을 정리하고 현재의 정관사옥으로 신축 이전했다. 삼일전기의 역사는 1975년 4월 박 회장의 남편인 고(故) 이병일 사장이 부산 부산진구 양정에서 창업하면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오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2007년 5월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박 회장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경리로 회사 일을 했으나 막상 남편이 떠나고 나니 앞이 막막했어요. 남편의 빈자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그는 회사를 맡아달라는 남편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큰 슬픔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그해 12월 딸은 부사장에, 그는 회장에 취임했다. 벌써 10년째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술회했다. "남편이 가장 믿었던 사람의 배신, 직원들이 여자라고 깔보는 듯 한 분위기가 가장 괴로웠다"며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지만 알고도 모른 척 양심과 자율에 맡기며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분위기를 다잡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영업 현장을 뛰어 다녔다"고 말했다. 관공서와 대기업은 물론, 일감이 있는 곳이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협회에 가면 늘 홍일점이다. 젊은 사장들로부터는 그만 쉬라는 말까지 들었다.
종전에는 경쟁업체도 적고 회사의 명성과 품질만으로 수주가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10년 전부터는 영업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동종업체가 부산만 무려 700여개, 기장에도 70개로 수주경쟁은 거의 '전쟁' 수준이다.
하지만 삼일전기는 다른 업체가 모방하지 못하는 저력을 갖고 있다. 수주-설계-자재구매-제작-도장-조립-완제품-발주-시공까지 '원스톱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통상 하도급 주거나 타사에 제작을 의뢰하고 시공만 하는 회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회사는 특고압·저압배전반, 전동기제어반(MCC), 외함 등 수배전반을 제작한다. 또 플랜트전기, 토목전기, 전기·기계소방시설, 일반건축전기공사 등 모든 전기시설 작업을 한다. 이를 위한 배전반통합감시센터와 배전반용 디지털계측기시스템 특허를 갖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KS격인 중국강제인증규격(CCC) 인증으로 중국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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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전기수배전반 조립작업 모습. |
주로 지하철이나 대형공사장이 삼일전기의 무대다. 부산교통공사, 한국도로공사, 부산시건설본부, 한전, 항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포스코, 대한제강, 태광산업 등이다. 부산지하철 1~4호선에 설치된 어른 키보다 큰 수배전반 대부분이 삼일전기의 작품이라는 것. 금액만큼 규모도 크고 회로도가 복잡해 아무나 덤빌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15면짜리 배전반 한세트를 납품하려면 전 직원이 25일을 꼬박 매달려야 할 정도다.
박 회장은 "발주자들이 우리 회사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고 하면서도 품질에는 의문을 달지 않는다"면서 "문제는 최저가낙찰제로 경쟁이 너무 치열해 적정가격선이 붕괴되는 바람에 부실시공이 우려되고 예전만큼 수주 또한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글·사진=박종인 선임기자